장욱진 30주기 기념전 :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
2021.01.13 ~ 2021.02.28
현대화랑
무료 전시 (네이버 예약 필수)
세모, 네모, 동그라미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번졌습니다. 가족 그림이 많았는데요.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부모님이 저절로 떠오르더라구요. 가슴이 따뜻해지는 전시였습니다. 그림이 전시된 벽이 붉은색, 녹색, 파란색으로 되어 있었는데요. 녹색이 그림과 잘 어울려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천성적으로 서울이 싫다. 서울로 표상되는 문명이 싫은 것이다. 그래서 12년 전부터 아예 서울을 버리고 이곳 한강이 문턱으로 흐르는 덕소에 화실을 잡았다. 나는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덕소의 비를, 덕소의 달을, 덕소의 바람을, 덕소의 모든 것을 얘기해 준다. 그만큼 나는 덕소를 사랑한다.
새벽에 세계, 샘터, 1974.9
집도 작품이다.
장욱진에게 집은 가족과 생활하는 안식처이자, 작가의 예술적 영혼이 깃든 아틀리에였다. 그는 화백이나 교수보다 집 가(家)자가 들어가는 화가란 말을 제일 좋아했으며, “집도 작품이다”라고 즐겨 말하곤 했다.
집과 공간, 나아가 건축에 대한 장욱진의 관심은 그림의 조형적 질서와 구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집 혹은 나무를 중심으로 해와 달, 두 아이가 자연스럽게 좌우 대칭을 이루는 구도를 자주 사용했고, 화면에 타원형이나 사각형 등의 기하학적 공간을 별도로 구성했다. “나는 심플하다”라는 장욱진의 자기 고백이 작고 간결하지만, 응집력 강한 화면으로 표출된 것이다.
자화상
자화상은 장욱진의 작품세계 전체를 설명하는 작품이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가족을 먼저 부산에 피란시키고 자신은 고향 충남 연기군에 피란해 있던 시가의 대표작이다. 종이에 그려져 제작 한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 종이가 삭아 들고 있지만, 발색은 여전히 처음처럼 높은 채도와 색조를 유지하고 있다. 풍요로운 논길 사이로 유유자적하게 걷고 있는 서양풍의 신사가 등장하는 이 작품에서 전쟁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해학적인 작가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준다.
가족
작품의 양이나 내용으로 볼 때 장욱진만큼 가족을 그림에 표현한 화가는 드물다. 또한 유독 <가족도> 혹은 <가족>이라고 명명한 작품들이 가장 많은 것은 작가의 가족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작은 화폭에 네 식구가 집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의 <가족도>(1972)는 가족을 주제로 한 작품 중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가족도>(1972), <가족>(1973), <가족>(1975)처럼 장욱진은 대개 함께 있는 가족이 집안에 꽉 차도록 구성하여 가정이라는 의미를 더욱더 강하게 느껴지게 한다. 인물들의 자세는 조용히 서 있거나 혹은 앉아 있는 모습으로 전체적으로 정적이 흐르는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인물들의 표정과 자세를 재미있게 묘사하여 단란하고 정겨운 가족만이 아닌 가정생활의 다양한 측면도 포착해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
장욱진의 작품에는 개, 소, 병아리, 돼지, 닭 등 짐승이 자주 등장한다. 그중에서 작가는 <소>(1953), <소가 있는 마을>(1988), <황톳길>(1989) 등의 작품에서 이중섭만큼이나 소를 자주 출현시켰다. 작가의 작품 속 소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장욱진은 소를 통해 정서가 응축된 상징으로서의 가족을 표현한 것이다. 이런 가족적인 소 작품은 6.25 전쟁을 겪으면서 가족중심주의가 강해진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도 있었지만 장욱진에게 가족은 그 자체가 삶과 예술을 이끄는 힘이었으며 또한 작가가 꿈꾼 이상향의 동반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소가 등장하는 작가의 작품은 작가가 사랑했던 가족을 떠올림과 동시에 잊고 있던 따뜻한 가족의 정을 새로이 느끼게 한다.
가족, 사랑의 마음을 담아
장욱진의 그림에서 가족은 작은 집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거나, 자연 속을 산책하거나, 한가로이 농촌 생활을 즐기는 모습이다. 이들은 전업 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심적으로 물질적으로 성심껏 도와준 자신의 가족을 그린 것이자, 사랑과 행복의 감정을 상징하는 존재들이다. 생전 작가는 가족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오직 그림을 통해 이해된다고 강조하곤 했다.
장욱진은 사람뿐 아니라, 소와 돼지, 닭 등 주변 동물을 그릴 때도 가족을 강조했다. 어미 소 아래에서 젖을 먹는 송아지, 마당을 뛰놀거나 하늘을 나는 어미새와 새끼 새 등 어미와 새끼를 함께 그려 동물의 가족을 묘사했다. 뒷동산에서 한가로이 노는 어른과 아이, 소와 돼지 그리고 하늘을 유유히 나는 새 가족의 모습은 장욱진이 꿈꾼 자연 속 가족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나는 심플하다.
때문에 겸손보다는 교만이 좋고 격식보다는 소탈이 좋다.
새벽의 세계, 샘터, 1974.9
그림은 나의 일이고 술은 휴식이니까 사람의 몸이란 이 세상에서 다 쓰고 가야 한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이니까.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서 다 써버릴 작정이다.
저 멀리 노을이 지고 머지않아 달아 뜰 것이다.
나는 이런 시간의 쓸쓸함을 적막한 자연과 누릴 수 있게 마련해준 미지의 배려에 감사한다.
내일은 마음을 모아 그림을 그려야겠다. 무엇인가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강가의 아틀리에, 1965.8
장욱진과 까치
까치는 장욱진의 분신처럼 다수의 작품에 등장하며 또한 작가와의 인연도 깊다. 1930년 어린 장욱진이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고등학교)에 재학 당시 독특하게 그린 까치 그림을 미술교사가 히로시마고등사범 주최 전일본소학생미전에 출품하여 1등 상을 받았다. 이 사건은 어린 장욱진에게 자신감을 부여하며 화가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마을(1973), 까치와 나무(1986), 까치와 아낙네(1987), 들 풍경(1988), 나무(1990) 보이는 것처럼 까치는 예술활동 전반에 걸쳐 등장했으며 평생 까치를 사랑했다. 작가의 부인인 이순경 여사가 "저이는 전생에 새였을 거예요. 그리고 다음 생에도 한 마리 새로 돌아올 거예요"라고 할 정도였다.
현대화랑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8
화요일 ~ 일요일 10:00 ~ 18:00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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