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검은우유
정현, 정재철, 연기백, 이세경, 심승욱
BLACK MILK of DAWN
Chung Hyun, Jeong Jaechou, Yuon Kibaik, Lee Sekyung, Sim Seungwook
김종영미술관
2020.01.17 ~ 2020.03.15
화요일 ~ 일요일 l 10:00 ~ 18:00 (월요일 휴관)
무료전시
심승욱 Sim Seungwook, < Do not forget to Smile >
금빛 독수리 두 마리가 양쪽 각기둥 위에 자리를 틀고 앉아있다. 그 두 목재 기둥 사이에 연결된 철선애는 녹아내린 듯한 문장의 부분이 한 줄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설치된 4개의 작업에는 파울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의 글귀가 부분 부분 녹아 내리듯이 걸려있다. 아도르노가 말했다. 아우슈비츠 이후 인간은 서정시를 쓸 수 없다. "그 행위 자체가 위선적이라기보다는 인간성의 극단적 파괴 즉 죽음 속에서 살아있음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얼마나 공허한가?"라는 말 같다. 그러나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는 아우슈비츠를 아름다운 서정시의 언어로 재구성했다. 그 아름다운 시의 구절 속에서 우리가 보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공허한 것인가? 반복되는 구절의 언어적 미감 속에서 우리가 의식 속에 흔적으로 남기고 혹은 소멸시키는 가치들은 무엇일까? 이 작품은 그런 것에 관한 진지한 질문이다.
또 다른 개의 동일 작품의 철선 위에는 "Do not forget to Smile"이라는 문구가 부분 부분 녹아내려 하나는 "Do not.....Smile!"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Do not forget.....!"이라고 되어 있다. 존재하는 것, 인식 혹은 이해되는 것 믿는 것 혹은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에 의해 가능한가? 그 대척점에 자리한 사라진 것, 의미가 읽혀지지 않는 것, 불신 그리고 버려진 것은 우리가 물질 영역의 흔적들을 가치판단의 근거로 할 때 지극히 무가치한 것으로 자리하는가? 그것은 예술에서 또 다른 가치로 자리한다. 상상, 새로움, 엉뚱함, 오역 같은 것이고 그것은 많은 잠재적 경우의 수와 의외의 사건들을 만들어 낸다.
이세경 Lee Sekyung, <Recollection> 시리즈
흔히 사람들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에 대해서는 관대함이 사라지는 것 같다. 그것이 자신의 머리카락이라고 할지라도 그저 혐오스러운 대상으로 여기게 되는데 나는 이러한 머리카락이 재배치되는 작업 과정을 통해 탄생된 작품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반응에 주목하게 되었다. Reflection이라는 프로젝트는 그 단어의 의미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기억, 회상, 추억에 대한 작업이다. 나는 사람들이 모아준 머리카락을 아용하여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그들의 머리카락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나에게 머리카락은 오랜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축적되어 있으며 각자의 소중한 추억과 기억, 가쁨과 슬픔을 모두 담고 있는 저장 창고 같이 느껴졌고 그런 생각으로부터 이 리콜렉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프로젝트 참여자는 일정 기간 본인의 머리카락을 모으거나 미용실에서 자른 머리카락, 혹은 과거에 자르고 보관하고 있던 머리카락을 가져오기도 한다. 머리카락과 함께 각자의 이야기와 그것과 연관된 이미지를 함께 모아 작업을 하게 되는데 그 스토리와 이미지는 각자의 삶에 있어 중요한 어느 시점이나 장소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때론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 가족에 대한 기억 등 다양하다. 참여자가 제공한 머리카락의 앙과 색, 그리고 그들이 제공한 이미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작품의 크기나 포맷을 결정하고 맞는 크기의 타일 위에 머리카락을 붙여 나가면서 이미지를 완성한다. 이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인데 참여자의 머리카락과 그들이 제공한 이미지와 사연을 생각하면서 머리카락을 한 올 한올 붙이다 보면 작업과 재료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경건해지고는 한다.
정현 Chung Hyun, <무제 Untitled>
십 수년 동안 기차의 무게에 혹독한 시련을 견딘 침목이나 자동차 도로의 아스콘(아스팔트 콘크리트의 줄임말), 15톤 무게의 쇳덩어리가 8톤이 되도록 다른 물질을 깨고 제 몸이 부서지는 정직한 노동들 후에, 흔적들은 척박하거나, 추하거나, 가난하다. 버려질 수밖에 없는 그들은 비천하다. 낮은 개념의 것들이다.
낮은 것 자체에서도 끌어올릴 것들을 찾아 높일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싶다. 존재의 힘을 건드려 보고 싶다. 강원도는 매해 산불이 난다. 특히 작년에는 나무를 땅을 몹시도 아프게 했다. 이 축음들을 둘러보고 스케치하고 잔해들을 작업실로 옮겼다. 무엇을 할지 모르겠지만, 무엇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고민해 보려고 가지고 왔다.
정채철 Jeong Jaechoul, <블루오션 프로젝트 2016 Blue Ocen Projcet 2016>
2013년부터 현장 작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블루오션 프로젝트는 해양오염과 바다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미술이 어떻게 그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바다 쓰레기 문제는 대형 양식업, 내륙에서의 유입, 무분별한 투기 등 그 발생요인의 증가로 심각한 해양오염을 일으키고, 해양사고를 유발하기도 하며, 수산업 전반에 타격을 주고 급기야 그 영향이 인간에게까지 미치는 등의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는 환경오염을 넘어 환경훼손, 그리고 자연의 파괴로 순환하는 사이클이 작동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접근이 용이한 곳으로는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나 우리의 해안 역시 예외가 아니다. 조금만 주의 깊게 살피면 폐 어구 및 플라스틱류와 스티로폼, 생활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본 프로젝트는 이러한 바다쓰레기와 그로 인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미술적 실천을 통해 그 해결방안에 대하여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블루오션 프로젝트 2016은 2013년과 2015년의 2차에 걸친 현장 작업과 전시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해안 가까이에 거주하는 주민 및 학생들을 그 첫 번째 대상으로 하며 학교 및 마을회관, 그리고 주변 해안 등에서 진행하였다. 이는 놀이와 산책을 통한 수집과 오브제 만들기, 그리고 퍼포먼스, 설치 등의 미술적 활동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로부터 도출된 결과는 현장 전시를 통해 발표되었다. 그리고 8차에 걸친 특정 해안을 답사하여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기록하며, 해양부유사물들의 표본을 수집하고 주민 인터뷰를 진행했다.
연기백 Yuon Kibaik, < 농축된 史>
더 이상 절대적일 것도 없을 이 시대에 내가 발견한 일은 일상에서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들과 대면하고 대화하는 일이다. 이런 대화는 알지 못하던 많은 이야기들을 알게 하는 교감과 교섭의 시간을 제공한다. 대상의 결을 따라 거슬러 가다 보면 새로운 이야기들이 드러난다. 때로는 둘만의 교섭을 넘어 또 다른 제 3자와의 교섭도 이루어지곤 한다. 이는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작업실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나의 작업에 스며들고 또 다른 모습으로 서로의 흔적을 서로 남긴 채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헤어진다. 그리고 또다시 찾아올 무엇을 기다린다.
그러는 사이 세상을 여유롭게 보고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더 넓을 관점을 발견하려고 한다. 이러한 일을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 일이 내가 작업으로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유는 성과중심의 사고에 매몰된 포화된 긍정과는 다른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잊혀져 가는 대상들과의 대화는 주변의 시선으로 ‘그들만의 사회’ 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얻기 위한 일이다. 소외와 좌절 그리고 분노, 그 다른 면에는 인간 중심의 분열된 자아가 아닌 생명 중심을 위한 뜨거운 열망이 잠재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먼 오지나 원시사회에 대한 연구로서만이 아닌 현재의 일상의 삶 속에 내재된 그 곁들을 읽어내고자 한다.
< 전시소개 >
"새벽의 검은 우유” 는 루마니아 출신의 프랑스 시인 플 첼란의 유명한 ‘축음의 푸가(Todesfuge)' 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홀로코스트로 가족을 잃은 첼란은 죽음과 생명의 윤회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하여 '검은 우유'라는 이미지를 사용하였다. 이번 전시는 우선 '검은 우유'에 비견될 만큼 강력한 파괴의 기억을 담고 있는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첼란의 시구를 인용한 심승욱의 텍스트 설치, 지난 4월 강원도 산불로 인하여 검게 태워진 불탄 나무의 물성을 이용한 정현의 설치, 철거된 집에서 발견된 벽지를 재구축한 연기백의 <환이네 다락방>은 훼손된 상태의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타일 위에 부쳐서 완성한 이세경의 <리콜렉션> 시리즈, 바다에 떠다니는 부유물과 수집 과정을 사진과 드로잉으로 기록한 정재철의 <블루오션 프로젝트> 또한 사용자의 손으로부터 떠난 폐기물로 만들어져 있다.
≪새벽의 검은 우유≫는 재료의 확장성 너머, 버려지고 소외된 물질과 관객들 사이의 감각을 통한 소통방식을 시험하는 자리이다. 해지고 파괴된 나무, 철선, 종이, 소비재의 표면, 그리고 머리카락은 어떠한 방식으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상상하고 느끼게 하는가? 어떻게 물건의 흔적과 기억에 대한 관객의 공감각적이고 감정적인 해석이 가능해지는가?
첼란의 시에서 화자가 매일 검은 우유를 섭취하는 것과 같이 죽음이나 파괴와 연관된 물질들이 지속해서 우리의 몸과 접촉하고 감각을 깨우는 과정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 고동연 미술비평가
김종영미술관
KIM CHONG YUNG MUSEUM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32길 30
30, Pyeongchang 32-gil, Jongno-gu, Seoul, Republic of Korea
02-3217-6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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