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호 나에게 보이는 흔적들
LEE JUNG HO The Stains That I See
학고재 프로젝트 스페이스 Hakgojae Project Space
2020.09.09 ~ 2020.09.30
화요일 ~ 일요일 11:00 ~ 18:00 (월요일 휴관)
무료전시
전시명인 나에게 보이는 흔적들이란 제목처럼 작품 속에서 겹겹이 쌓인 시간의 흔적들이 느껴집니다.
예쁘지 않아도 흔적에서 보이는 히스토리, 색상, 질감 등을 보고 느끼면서 과거에는 어떠했을지 어떤 모습이었을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 작가노트 >
엔트로피, 이 자연계의 만물은 지속적으로 쇠퇴해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 무질서가 바로 내 작업의 원동력이 되는 주제이다. 어린 시절, 서울에는 한창 건설 붐이 일어났는데 나는 공사현장을 돌아다니며 살다시피 했다. 공사현장에서 특히 혼돈과 질서가 공존하는 이런 곳에서 나는 아름다움과 영감을 발견하곤 했다. 하지만 건물이 다 지어지고 건물 안팎이 깔끔하고 새로운 자재들로 옷을 갈아입고 나면 그 공간은 인위적으로 변해 거리감이 느껴지고는 했다. 깔끔하게 잘 닦인 모든 선 뒤에 심장박동은 무질서하면서 날것의 원재료 그 자체이지만 시각적으로 모든 연관성은 상실되었다. 비록 자연계의 모든 것이 그 쇠락함에서 태어나 또 그 쇠락으로 치닫는 가운데, 거대한 현대식 고층 건물들이 새롭게 포장되어 출현하면서 엔트로피는 시대성을 잃고 시간은 얼어붙는다. 그렇게 쇠락한 현장을 찾아 나는 이 거리로 돌아왔다.
헤매고 돌아다니다가 버려진 쓰레기 더미의 더러운 얼룩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은 설레기 시작했다. 가까이 차창에 생긴 투명무늬를 바라보면서 학교에서 공부하고 미술관에서 만났던 예술가들이 떠올랐다. 낡고 오래된 전자제품 더미들, 찢겨진 벽보들, 수많은 형편없는 낙서들은 거리감이 느껴지는 모더니티(현대성)에 숨을 불어넣는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흔적들과 구성요소들을 그들의 가치가 발현될 수 있도록 정당한 지위를 찾아주고 싶기에 나는 작업실로 다시 돌아온다.
작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캔버스에 놓여있는 처음 몇 가지 흔적들을 나의 본능이 받아쓰도록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기억은 어제의 미묘한 세부 사항을 신선하게 기억한다. 이런 직관적인 흔적들이 깔리면서 한 폭의 그림을 구성해나가기 시작한다. 때로는 강조하면서 때로는 지워가면서 층을 더 쌓아 올릴수록 그 표면은 점점 더 암시적으로 복잡해진다. 한 폭의 그림은 쇠락해가는 도시의 요소들을 서서히 드러내고 나는 캔버스에서 내 기억과 함께 위장된 시선을 찾기에 여념이 없다. 안타깝게도 그리고 때로는 다행스럽게도 종종 실수를 하게 되면서 때론 그 표면은 완벽하게 방향을 틀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실패했던 시도 또한 겹겹이 쌓이면서 일찍이 내가 목도한 유레카의 순간에 점점 가까이 다다르게 된다. 모든 개개의 흔적들이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정체 상태이거나 아니면 새로운 또 다른 흔적들이 표면을 악화시킨다고 느끼면 나는 종국에는 작업을 멈추고 한 폭의 그림은 비로소 대중에게 보여질 준비를 갖춘다.
학고재 프로젝트 스페이스 Hakgojae Project Space
서울특별시 종로구 팔판길 22-3
22-3 Palpan-gil, Jongno-gu,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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