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9 전시후기

을지로전시 OMYO CHO TAXI DERMIA (엔에이갤러리)

by 통통돈까스 2020. 2. 5.
반응형

OMYO CHO - TAXI DERMIA

n/a gallery 엔에이갤러리

2019.10.24 ~ 11.30

무료전시

 

TAXIDERMIA

Taxidermy + -ia의 합성어, Taxidermy는 박제, 접ㅁ사 -ia는 병이나 특정 상태를 의미한다.

박제는 동물의 사체를 살아있을 때보다 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행위다. 박제는 장식품이자 사치품이다.

산 것보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비싼 이상한 현실이다.

사회도 마친가지다. 찰나를 이미지화해서 그 순간을 영원히 떠받든다. SNS는 개인의 생활 중 일부만을 영원히 박제하고, 정치도 한 순간의 이미지로만 기억된다. 박제된 호랑이는 언제나 포효하는 법이다. 이 과정에서 이미지와 괴리된 실제의 삶은 기억되지 않고, 기억되지 않으므로 살해당한다.

나는 박제된 이미지만 기억되는 현대 사회를 TAXIDERMIA라 부른다.

 

 

 

 

 

 

 

 

을지로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인쇄골목에 버려진 수많은 나무 판들이었다. 그 판에는 내가 해석할 수 없는 도형이 기하학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다른 이들은 아직 알지 못하는 초예술을 발견한 것이다. 인쇄업자들은 이 판을 도무송이라고 불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말은 톰슨(Thomson) 프레스에서 왔다. 영국의 톰슨 프레스가 일본으로 넘어가 '도무손가공'이 되었고 한국으로 건너와 도무송이 되었다.

도무송(Thomson)?토마손(Thomasson)? 이 둘의 철자가 비슷한건 우연에 불과하지만, 나에겐 어떤 계시처럼 보였다.

 

 

도무송은 스티커 같은 특이한 형태를 찍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칼날이 박힌 나무판이다. 

스티커의 모양은 해당 시기 인쇄소가 의뢰받은 제품에 따라 모두 다르므로 도무송의 모양도 모두 다르다. 사용기간이 짧아 가장 저렴한 재로 만들어진다. 자유로운 모양을 재단하기 위한 도구지만, 그 자체는 전혀 자유롭지 않아서 나무에 박힌 칼날 형태로만 종이를 재단할 수 있다. 자아를 구속하는 초아자처럼 도무송은 자유를 구속한다. 다른 모양을 주문받으면 새규칙(도무송)이 필요하다.

 

 

주문량을 모두 채운 모두송은 그대로 버려진다. 버려진 도무송은 더 이상 도무송이 아니다. 죽음은 박제가 되고 이미지가 되지만, 세상은 불공평하기에 모든 죽음이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도무송처럼 값싼 것의 죽음은 박제되지 않는다.

현대에는 수십수만 건의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인스타 피드가 1초마다 수십 개씩 올라와 이전 피드를 덮어버린다. 을지로에서만 하루 수백개의 도무송이 버려지지만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살아난다. 모든 도무송은 다르지만, 이미지가 되지 않으므로 마치 예전의 것이 죽었다 살아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삶이든 도무송이든 모두 다른 모양과 규칙, 스토리를 가지고 있찌만, 기억되지 않으므로 의미 없이 사라진다. 무한한 죽음은 무한한 탄생, 그 속에는 어떤 이미지도 없다.

 

 

예술적인 것들이 넘쳐나서 오히려 이미지를 남기지 못하는 시대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는 어쩌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아직 다른 이가 발견하지 못한 초예술을 찾아다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도무송의 패턴이 사실은 재단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인쇄업자가 임의로 배열한것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인쇄소의 도무송이란?

명함, 스티커, 전단지 등 인쇄상품은 직선으로 재단하는데 특별한 모양을 원하는 경우 원하는 형태의 상품을 제작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

 

 

 

 

n/a Gallery 엔에이갤러리

서울특별시 중구 창경궁로5길 27, 2-3층

https://www.nslasha.kr/

https://www.instagram.com/nslasha.kr/

 

728x90
반응형

댓글